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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생각해보니 나는 외할머니를 별로 안좋아했다. 항상 얼굴을 보면 좋은 말보다, 쓴소리를 먼저 하셨기 때문에.

어쩌면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나는 항상 수치스럽고 듣기가 싫었다.

어째서인지 오빠나 동생한테는 하지도 않는 말을 유독 나한테만 하셨었다. 늘 섭섭했다. 부끄러웠다. 싫었다.

그래서 자꾸 할머니를 보는 것을 피했다.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들었었다. 언제나, 늘.

그럼에도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길 바라왔었던 것은 엄마 때문이다. 엄마에게 잡을 수 있는 동앗줄은 할머니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린 우리를 덜컥 두고 떠났던 엄마를 알기 때문일까. 엄마에게 우리는 금방이라도 놓을 수 있는 존재, 그러나 할머니와는 우리랑은 다른 끈끈함이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엄마가 울까봐, 엄마가 갑자기 우리를 덜컥 놓고 또 떠나버릴까봐. 떠난 곳이 다시는 영영 닿을 수 없는 곳일까봐. 내내 마음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괜찮느냐고. 엄마, 괜찮냐고.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실감 나지 않았다. 마음도 이상하게 고요했다. 폭풍이 오기 전 날 밤처럼. 잔잔한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며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할 일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왔다. 엄마의 옆에서 알아듣는 척, 이해하는 척 했지만 너무 어려웠다. 사람은 살아서도 돈에 휘둘리며 사는데, 죽어서도 돈에 휘둘린다. 죽는 것도 결국 돈이다. 몰래 휴대폰을 들어 장례식을 꼭 해야하는지 검색을 했다. 만약 나는 죽는다면, 장례식을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장 밥은 참 맛이 있었다. 장례식장 밥이 맛있으면 고인이 좋은 곳에 간거라던데. 그날 밤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잠을 자려고 누워있는 내내 엄마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주 들어왔어서, 마음을 늘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는.

 

할머니의 입관식 날, 다함께 긴장한 얼굴로 모여 할머니를 보러 갔다. 작고 아담한 할머니가 수의를 입고 누워있었다. 곱게 화장까지 하고선. 몸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하고싶은 말을 하라고 하셔서, 할머니의 작은 발을 잡아 보았다. 천 너머로 찬기가 올라왔다. 친 할머니의 장례식 날 아빠가 그랬던 것 처럼 오빠도 통곡을 하며 울었다. 그렇게 우는 오빠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어쩐지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너무 슬프진 않았다. 그런데 눈물이 났다. 할머니의 죽음에 이렇게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어쩐지 나를 울렸다. 엄마도, 이모할머니도, 오빠도 모두가 울었다. 관 안에는 온갖 알록달록한 꽃들이 들어 있었다. 꽃 위로 할머니의 몸을 뉘었다. 본인이 직접 10여년 전 준비한 수의를 입고, 예쁜 꽃 관에 몸을 뉘이고 떠났다.

그 날 저녁 밥을 먹으며 오빠의 연애 이야기를 듣고, 하하하 웃고. 하루종일 잠을 잤다. 바쁜 날이라고 했는데, 너무 졸려서 잠을 내리 자버렸다. 자도 자도 졸렸다.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렀다.

 

할머니 발인 날,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왔다. 예쁜 함에 담겨 있는 할머니는 가장 낮은 자리에 들어가셨다. 고개도 몸도 바닥에 바짝 붙여야 볼 수 있는 위치에 놓이셨다. 토요일에 함께 할머니를 보러 가기로 했다. 할머니의 납골당 칸을 꾸밀 미니어처를 만들기로 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집을 가는 데 문득 생각났다.

내가 초등학생 때 할머니와 함께 살던, 어릴 때의 나는 외할아버지라고 생각하였던 존재.

할아버지는 잘 계실까? 돌아가셨을까?

아직도 할아버지가 해주신 피자빵이 생각난다. 피자빵 위에 바나나를 슬라이스해서 얹어 구워주시곤 했다.

아직도 할아버지의 그랜저 뒤에 타고 시골길을 다니던 기억이 난다. 덥지 말라고 에어컨을 늘 시원하게 켜주셨었더랬다.

그랜저 안에서 맡았던 할아버지 차의 냄새도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항상 우리에게 다정했었던 그 분이 알고보니 서울대도 나오신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할머니를 따라다니셨다고 그랬다.

나중에는 결국 낚시를 갔다가 잘못되셨다던가? 라는 이야기를 동생이 물었는데, 엄마는 잘 모른다고 한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돌아가셨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진 할아버지에게 너무 섭섭했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할머니와 만나셨을까. 좋은 곳에 가셨으면 좋겠다.

아직 살아 계신다면, 건강히 계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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