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de-image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밤을 두드린다. 나무문이 삐걱댔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다. 가축을 깨무는 이빨을 자판처럼 박으며 나는 쓰고 있었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이 장례가 끝나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뼛가루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데 내가 거기서 나왔는데 저것을 핥으면 갓 출산한 피 맛일거다. 식도에 호스를 꽂지 않아 사람이 죽었는데 너와 마주앉아 밥을 먹어도 될까. 사람은 껍질이 되었다. 사람은 헝겊이 되었다. 그림자가 되었다. 연기가 되었다. 비명이 되었다 다시 사람이 되는 비극. 다시 사람이 되는 것. 다시 사람이 되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까. 케이크에 초를 꽂아도 될까. 너를 사랑해도 될까. 외로워서 못 살겠다 말하던 그 사람이 죽었는데 안 울어도 될까. 도망가도 될까. 상복을 입고 너의 침대에 엎드려 있을 때 밤을 두드리는 건 내 손톱을 먹고 자란 짐승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이렇게 살아도 될까. 변기에 앉고 방을 닦으면서 다시 사람이 될까 무서워. 너에게 그런 고백을 해도 될까. 저 짐승이 나 대신 살아도 될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묻는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나무문을 두드리는 울음을 모른 척 해도 될까.

'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산조각, 정호승  (0) 2020.09.30
안개 속을 걸어가면 밤이 우리를 이끌었고, 이제니  (0) 2020.09.18
포도, 허수경  (0) 2020.09.01
동천으로, 허수경  (0) 2020.09.01
조도, 황인찬  (0) 2020.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