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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의 집에 들어 전기난로를 쬔다
간밤 내 정강이를 지진 주범에게 손을 내밀다니
그래, 사실, 너는 잘못이 없다
따뜻함에 취해 술에 취해 잠에 취해
너무 오래 너를 가까이 한 내 죄를 손 비빈다
네 덕분에 외과의사에게서 한 수 배웠다
화상이란 치료하기에 따라서
잘 하면 있던 병도 고칠 수 있고
잘 못하면 없던 병도 얻을 수도 있다 했다

따뜻한 것에서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 했다
상처를 치료하는 의사의 손을 보면서
나는 마음의 상처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따뜻한 너를 너무 오래 가까이 해서
천천히 익어버린 정강이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나는 내 마음에도 무엇을 오래 가까이 해서 생긴 상처들이
여러 군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잘 아물어서 더 빛나는 것들과/ 만나서 오래 진물이 흐르는 것들의 잔해
혹한의 집에 들어 너를 적당히 다가가고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히 언 손을 내밀며 생각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파리처럼/ 손을 비비며 내가 잘못했다고 그럴 수만 있다면
다 늦은 마음의 상처들을 불러내고
따뜻하기만 했던 그들도 모셔다가 중재를 시키고도 싶었다
혹한의 겨울 추위 떠는 집에 들어 전기난로를 켜고
아주 가까이는 마주 하지 않으면서/ 뜨뜻미지근하게 쳐다보기만은 하면서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하면서 너를 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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