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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강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를 처음 사랑하게 되었지

물속에 잠긴 발이 신비롭다고 느꼈지

검은 돌들 틈에서 흰 발가락이 움직이며

은어처럼 헤엄치는 듯했지


너에 대한 다른 것을은 잊어도

그것은 잊을 수 없지

이후에도 너를 사랑하게 된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 첫사랑의 강

물푸레나무 옆에서

너는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지


많은 여름들이 지나고 나 혼자

그 강에 갔었지

그리고 두 발을 물에 담그고

그 자리에 앉아 보았지

환영처럼 물속에 너의 두 발이 나타났지

물에 비친 물푸레나무 검은 그림자 사이로

그 희고 작은 발이


나도 모르게 그 발을 만지려고

물속에 손을 넣었지

우리를 만지는 손이 불에 데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

기억을 꺼내다가 그 불에 데지 않는다면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때 나는 알았지

어떤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우리가 한때 있던 그곳에

그대로 살고 있다고

떠나온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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