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트럼> 中 마음에 들었던 부분들.
알아낸 사실들 이면에는 여전히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있었다. 희진은 이곳의 생명체들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들을 지배하는 센트럴 도그마는 무엇인지, 그들은 지구의 생명체들과 같은 단백질과 유전체를 공유하는지, 그들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은 어떤지 궁금했다. 그들의 시신경에 닿는 이 세계의 풍경이 궁금했다. 희진은 무엇보다도 루이가 이따금 희진을 향해 입을 길게 찢으며 일그러진 표정을 지어 보일 때, 그것이 희진을 따라 미소 짓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알 수 있다면 마주 웃어 줄 텐데.
…
네 번째 루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진은 네 번째 루이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희진을 향하는 시선, 표정. 여전히 읽을 수 없는 감정.
희진은 뒷걸음질 쳐 동굴의 입구로 물러났다. 루이는 천천히 희진에게 다가왔다. 희진은 물러서다 휘청거렸다. 루이가 팔을 뻗어 희진을 가볍게 붙잡았다.
희진은 순간 눈 앞의 루이에게서 익숙한 얼굴을 본 것 같았다.
그들이 정말로 색채를 의미로 읽는다면, 동굴의 그림들은 다음의 루이에게 이전의 우리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지도 모른다. 루이들은 계속해서 기록해왔을 것이다. 루이 자신에 관해, 무리인들에 관해, 희진이라는 낯선 존재에 관해. 만약 루이들이 그들의 역사를 기록할 의무를 맡았다면, 루이의 동굴이 가장 햇볕이 잘 드는, 늘 일정하게 많은 빛이 쏟아지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지도 모른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마음이 느슨해졌다. 루이가 바로 며칠 전까지 함께 지내던 바로 그 루이처럼 느껴졌다. 루이는 희진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희진의 뒤로 펼쳐진 노을을 보고 있었다.
"그럼 루이, 네게는."
희진은 루이의 눈에 비친 노을의 붉은 빛을 보았다.
"저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겠네."
희진은 결코 루이가 보는 방식으로 그 풍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희진은 루이가 보는 세계를 약간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고, 기쁨을 느꼈다.
…
"이건 루이가 나를 기록하고 관찰한 일기였어. 일종의 연구노트라고 할까. 내가 그들을 관찰하고 탐색한 것처럼 루이에게도 나는 연구대상이었던 셈이지. 어쩌면 그들은 내가 아주 먼 곳에서 온, 도구가 없어 무력한 학자임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할머니는 나에게 루이가 쓴 기록의 내용을 읽어주셨다. 지구에 돌아온 이후로 할머니는 여생을 색채 언어의 해석에만 몰두했다. 내용의 대부분은 그렇게나 시간을 들여가며 알아낼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평범한 관찰 기록이었다. 그러나 그중 잊히지 않는 한 문장만큼은 지금도 떠오른다.
"이렇게 쓰여 있구나."
할머니는 그 부분을 읽을 때면 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숨을 거두기 전 할머니는 연구노트의 처분을 나에게 맡겼다. 나는 기록의 사본을 남기고, 원본은 할머니와 함께 화장했다. 찬란했던 색채들이 한 줌의 재로 모였다.
나는 할머니의 유해를 우주로 실어 보내 별들에게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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